하지만 현재의 시점에서 ‘아메리칸 캐주얼’의 히든카드는 소위 ‘포스트 아메리칸 캐주얼’로 불리는 스트리트웨어라는 사실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아메리칸 스트리트웨어는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도시 젊은이의 스타일이자 복식 경향이었다. 스트리트 스타일에는 캘리포니아의 스케이트보드와 서핑문화, 힙합과 펑크적인 패션요소들이 결합되어 있고 도회적이고 스포티하면서도 실용적이다.

1986년 뉴욕의 백인 밴드 비스티 보이즈가 펑크에서 영감을 얻은 힙합 앨범 ‘라이센스트 투 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그들은 운동화와 후드 티, 그리고 브랜드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를 입은 미국식 스트리트웨어 스타일을 선보였다. 또한 폭스바겐 마크를 뜯어 체인에 달아 목걸이로 사용했으며 곧바로 팬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며 패드로 부상했다. 물론 이런 저항적인 패션은 폭스바겐 자동차 소유주들인 기성세대를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말이다.

스트리트웨어는 데이웨어와 이브닝웨어의 구분이 없었다. 그야말로 장르리스였다. 헐렁한 바지에 운동화, 오버사이즈 티셔츠와 캐주얼한 재킷을 밤낮으로 입었고 클럽에 갈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트리트웨어는 곧 아메리칸 캐주얼의 얼굴 마담으로 부상했고 곧바로 유럽과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젊은이들의 유니폼이 되었다. 이는 80년대 M-TV의 영향으로 미국의 대중문화에 대한 전 세계적인 로망은 극에 달했고 ‘SSUR’이나 ‘스테이플디자인’, ‘워트루색슨’ 같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가 부상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 도시의 젊은이들은 파리의 디자이너 패션이 고리타분하고 비싸다고 여겼다. 반면에 아메리칸 캐주얼의 스트리트웨어 스타일은 보다 세련되고 젊어 보였으며 저렴하고 멋진 언더그라운드의 느낌을 주었다. 패션쇼나 럭셔리 디자이너 부티크와는 거리가 먼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는 젊은이들에겐 안성맞춤이었다. 이들은 자신들과 같은 취향을 가진 펑크, 힙합, 그래피티, 서핑, 스노우보딩 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소규모의 어반 브랜드를 선호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였던 에릭 브루네티는 1990년대에 브랜드 ‘FUCT’를 론칭했다. 그리고 가장 인기 있는 스트리트웨어 디자이너 히로시 후지와라는 펑크의 영향을 받아 디제이와 음악 프로듀서로 활동했다. 미국 브랜드 ‘엑스 라지’의 디자이너들은 건축가로도 활약했다. 미국식 스트리트웨어의 선구자로 인정을 받은 캘리포니아의 서퍼 출신인 숀 스투시는 스케이트웨어와 워크웨어 그리고 군복물품 등에서 영감을 받아 1980년에 브랜드 ‘스투시’를 론칭하고 자신의 이름을 프린트한 티셔츠에 그래피티 태그를 달아 서핑보드와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아메리칸 스타일에 대한 기본 정의는 ‘실용성’과 ‘다양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스트리트웨어’가 숨은그림찾기처럼 영향을 미치고 있다. 종종 미국적인 관련성으로 주로 언급되는 워크웨어는 실용성과 다양성을 모두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 주목을 받고 있는 ‘베트멍’의 뎀나 바잘리아 역시 구소련을 경험한 세대로 미국 자본주의의 표상인 ‘아메리칸 캐주얼’에 대한 로망을 해체주의적인 스트리트웨어로 제시해 젊은 세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따라서 뎀나 바잘리아가 크리에이티브디렉터를 맡고 있는 ‘발렌시아가’도 따지고 보면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브랜드의 만남의 일종인 셈이다. WSGN의 수석 남성복 에디터 브라이언 트런조(Brian Trunzo)는 “로우 데님(생지)부터 유틸리티 셔츠와 필드재킷, 플란넬셔츠에 이르기까지 아메리칸 스타일은 헤리티지 워크웨어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칼하트’ ‘펜들턴’ ‘디키즈’ ‘리바이스’ 같은 미국의 헤리티지 브랜드가 대표적이다. 패션 역사학자 데어드리 클레멘트에 따르면 데님 청바지는 로데오와 목장에서 일하는 카우보이와 농부들뿐만 아니라 내구성 때문에 1930년대에는 죄수들도 일반적으로 착용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미국 내 남성복의 부활운동을 촉발시킨 것은 헤리티지 브랜드들이 아니었다. 이 운동을 추진해 나갈 제조업자들이 당시 드물었기 때문이다. 월가의 온라인 금융전문지 ‘마켓워치’에 따르면, 미국의 의류업체들은 1980년대 이후 80% 이상이 감소했으며 섬유공장들 또한 2000년 이후 약 50%가 감소했다.

특히 현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법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숙련된 이민자들에 의해 가동되는 미국 의류생산의 부활은 더욱더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미국의 스트리트웨어는 이러한 침체된 미국의 패션계에 구세주 같은 존재로 부상했다. 산업혁명과 유통혁명에 이어서 나타난 소비혁명을 통해서 밀레니얼세대 소비자들이 스트리트웨어로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리트웨어, 밀레니얼과 해체주의를 만나 글로벌 대안으로 부상

파슨스 패션스쿨의 패션&디자인 관련 연구교수인 하젤 클락은 “여성들의 아메리칸 스타일은 항상 능동적인 라이프스타일인 캐주얼과 기능성을 추구했다”고 말했다. 도나 카란은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해 이러한 패션미학을 옹호했으며, 바쁘게 활동하는 커리어우먼들을 위해 세퍼레이트로 구성된 시그너처 콜렉션으로 80년대에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물론 도나 카란이 제안한 ‘세븐 이지 피스’들은 오늘날의 유행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다. 요즘은 레깅스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인 NPD그룹은 요즘 모든 미국인들의 옷장에서 소비되는, 유행을 타는 옷차림을 애슬레저와 액티브웨어가 혼합된 ‘스패션(Spashion)’으로 부르고 있다.

2018 봄/여름 남성패션위크와 2017 가을/겨울 꾸띄르위크 기간 동안 나타난 런웨이와 스트리트패션을 살펴보면 스트리트웨어의 보편적인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남성 패션지 GQ의 디지털스타일디렉터 매트 세브라는 “아메리칸 스타일의 아이콘인 청바지, 티셔츠, 후드티가 미국 이외의 지역 디자이너들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 다양하게 다시 활기를 띠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고 말했다. 또 “챔피언의 후드티는 지금 미국 도처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과연 ‘베트멍’이 없었다면 그것이 가능했을까? 아마도 불가능했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매트 세브라는 이런 모습을 10년 전 일본에서 선보인 로우 데님의 재연에 비유했다. 그는 “세계시장에서 사람들은 이 실용적이고 웨어러블한 옷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해체주의 패션을 통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재생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것은 다시 새로운 것이 되고, 사람들은 몇 번이고 다시 사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WSGN의 수석 남성복 에디터 브라이언 트런조는 이것을 하위장르가 미치는 영향력의 교류로 보고 있다. 그는 “아메리칸 스타일은 순수하고 훼손되지 않은 것에 지대한 영향이 미치는 스트리트웨어적 비유에 적합하다. 즉,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는데 이는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인 인터넷 덕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아메리칸 스타일은 여전히 워크웨어에 뿌리고를 두고 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것들의 영향을 받아서 전혀 새로운 모습의 스트리트웨어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의 초기 사례는 놈코어(normcore)의 후계자인 ‘고프코어(gorpcore)’다. ‘파타고니아’ ‘노스 페이스’ ‘콜롬비아’와 같은 아웃도어 브랜드들의 덕분에 훨씬 더 실용적인 옷장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프코어’는 플리스재킷, 패닉팩, 윈드브레이커, 퍼퍼재킷, 파카, 하이킹부츠 같은 아웃도어 스타일에서 영향을 받는 디자인을 의미한다. 미국의 부유층들은 글램핑을 갈 때 대부분 고프코어 의상을 입는다. 애슬레저의 형제격인 스포티한 스타일의 아웃도어 역시 스트리트웨어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WSGN의 수석 남성복 에디터 브라이언 트런조는 “이런 기조는 전통적인 아메리칸 스타일과 테크놀러지 퍼포먼스웨어시대 사이에서 연결고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퍼포먼스 브랜드의 타이츠와 그 위에 스트리트웨어 쇼츠를 입고 유틸리티재킷이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워크웨어 아이템에 컬러블로킹의 판타고니아풍 풀오버를 입는 것이 이제 더 이상 어색하지 않다. 그것은 최근 유행하는 런웨이룩을 그대로 요약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 스트리트웨어는 과연 새로운 아메리칸 스타일로 자리를 잡을 것인가? 그것은 ‘스패션’일까 아니면 이미 ‘고프코어’로 이동한 것일까? 솔직히 말해 현재 시점에서 아메리칸 스타일의 진행경로를 확실하게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파슨스 패션스쿨의 하젤 클락 교수는 “미국은 단일문화 국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아주 복잡 미묘하기 때문에 흥미로운 변형은 아주 많다. 그것은 지난 100년 동안 발전한 아메리칸 패션의 매혹적인 부분이다. 진정한 다문화, 다민족, 다인종 국가일 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스타일은 다른 문화를 기꺼이 포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로라 킴과 페르난도 가르시아뿐만 아니라 ‘캘빈 클라인’의 랄프 시몬스, ‘코치’의 스튜어트 베버스, ‘DV’F의 조나단 선더스 등 미국의 유명 패션 브랜드들은 이민자 출신 디자이너들이 이끌고 있다. 미국은 용광로처럼 다양한 인종이 뒤섞인 나라다. 오늘날의 아메리칸 스타일은 다양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들을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요소는 없으며 모두 실용성과 가능성을 기반으로 하지만 그 범위는 훨씬 더 세계적이다. 미국 패션계가 트럼프 정부의 반이민법에 대해 슬로건 티셔츠와 시위 참여로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재 진화된 ‘아메리칸 스타일’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핫하고 매력적인 스타일 가운데 하나인 스트리트웨어다. 다시 돌아온 스트리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아메리칸 캐주얼 시크’는 도나 카란 식의 커리어우먼룩, 마이클 코어스 식의 부유한 여인의 이미지, ‘랄프 로렌’의 클래식한 폴로 라인, ‘타미 힐피거’의 프레피룩과는 거리가 멀다. 해체주의와 밀레니얼세대의 유별난 개취가 결합된 변종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80~90년대의 미국 청춘영화에서 보았던 자유로움과 스포티즘으로 무장한 범지구적인 스트리트웨어가 대세다. 차이점도 있다. 매력적인 스포티한 감성과 섹시한 로맨틱을 동시에 보여주는 새로운 스트리트웨어 스타일은 클래식한 아메리칸 스타일에 다운타운의 터프한 감성이 믹스되어 해체주의적인 디자이너들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와 손을 잡고 있다. 결론적으로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브랜드의 만남은 유럽 중심의 고급패션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패션의 진화단계이자 소비자 친화적인 브랜드가 요구되는 공급의 과잉시대가 만들어낸 부산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