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는 티셔츠에 개를 그리고, 질 샌더는 스웨터에 공룡을 그리는 등 하이엔드 디자이너들은 스트리트적인 감성을 차용해 ‘비싼지만 편한’ 노선을 선택했다. 반면 ‘슈프림’과 ‘후드바이에어’, ‘오프-화이트’ 같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들은 유명 럭셔리 브랜드나 다른 아티스트 브랜드를 그대로 모방한 ‘편하지만 비싼’ 노선을 선택한다. 이것이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밀레니얼세대들이 럭셔리 패션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SNS라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소통하는 밀레니얼세대들은 개인적인 스타일의 대척점에 있는 ‘코스프레’를 더 선호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코스프레’는 취미의 일환으로 특정 캐릭터를 따라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암묵적인 규칙을 따라가는 젊은 세대들의 옷 입기 방식이다. 즉,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팔로워들인 인플루언서나 셀러브리티들의 스트리트패션을 그대로 따라하는 ‘페블리카’ 현상이다.

결국 럭셔리 브랜드들은 스타 디자이너의 영입에서 더 나아가 대중들에게 인지도 있는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윈윈효과를 추구한다. 어려서부터 패스트패션에 익숙한 밀레니얼세대들에게 필요한 것은 유구한 ‘헤리티지’가 아닌 지금 당장 빠르게 소비할 수 있는 재미있는 ‘공유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인구통계학적으로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중국의 밀레니얼세대들이다.

이들의 핸드백 및 최고급 화장품의 구매가 급증함에 따라 지난해 중국시장의 럭셔리 관련 소비는 20% 성장한 1420억 위안(한화 약 23조5705억 원)을 기록했다. 최근 몇 년 동안 하락세를 보였다가 지난해 럭셔리산업은 2011년 이후 최고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 소비자들의 지출은 전 세계 럭셔리제품 시장의 32%를 차지하고 있는데, 시장의 가치는 2620억 유로(한화 약 341조2314억원)로 추산되고 있다. 결국 럭셔리시장의 부활이 중국 소비자와 밀레니얼세대 때문이라는 사실은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최근 럭셔리산업의 새로운 소비층으로 부상한 밀레니얼세대들은 ‘루이비통 x 슈프림’, ‘지미 추 x 오프-화이트’, ‘알렉산더 왕 x 아디다스’, ‘버버리 X 고샤 루브친스키’ 등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에 열광하고 있다. 또한 지난 2015년부터 2017년 말까지 중국 스트리트웨어의 판매는 연 62% 증가율로 일반 의류보다 3.7배가 높았다.

특히 ‘루이비통’의 남성복이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디자이너 버질 아볼로를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영입해 주목을 받고 있다. 콜라보레이션이 전문인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디자이너를 파격적으로 영입한 것은 ‘루이비통’의 중국시장 공략이 한층 더 가속될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전체 매출의 28%를 아시아, 특히 중국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루이비통’은 새로운 스트리트웨어 전략으으로 중국의 밀레니얼세대들을 공략하고 있는 셈이다.

스트리트웨어의 뿌리는 탈유럽적인 ‘아메리칸 케주얼‘에서 시작

그럼 밀레니얼세대들이 열광하는 스트리트웨어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전후 세대 인 부모들이 젊은 시절 열광한 ’아메리칸 캐주얼’이다. 미국의 패션 역사학자이자 코스튬 큐레이터 데어드리 클레멘트(Deirdre Clemente)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부터 미국의 젊은이들은 자신들만의 패션 미학을 찾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즉 전쟁이 끝난 후 유럽에서 벗어나면서 미국 젊은이들은 유럽이 규정한 패션의 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929년 뉴욕의 주가가 폭락하면서 세계는 경제대공황에 빠져들었다.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는 민족주의 성향이 고취되었고 전 세계는 실업자가 거리에 넘쳐나 대규모의 노동운동이 일어났다. 1933년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의 뉴딜정책은 경제난에 빠진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1930년대 후반기부터 경제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에너지와 활력은 미국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방식을 제공했으며 이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할리우드 배우인 마를렌 디트리히, 그레타 가르보, 조안 크로포드 같은 스타들의 글래머러스한 스타일은 젊은 여성들에게 패션의 영감을 제공했다. 조안 크로포드의 퍼프소매가 달린 가운과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비안 리가 입은 드레스, 라나 터너의 스웨터 룩은 대중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

패션 역사학자 데어드리 클레멘츠는 “보다 엄격한 계급적인 제도를 가지고 있는 유럽과 대조적인 아메리칸 스타일의 중요한 특징은 미국인들이 중산층에 가까운 옷을 입는 경향이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즉, 1930년대 이후 미국에서 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옷을 입는 것은 더 이상 매력적인 모습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결국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과 각을 세우며 강대국으로 부상하면서 ‘아메리칸 모드’라고도 불리는 아메리칸 스타일은 파리, 이탈리아, 런던 스타일과 함께 전 세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다. 미국은 독립 이후 오랫동안 유럽의 유행을 추종했지만 20세기에 들어서자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영화산업을 통해사 ‘할리우드 스타일’이 정착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성장한 경제력, 생산능력, 확실한 판매망, 광고의 파워 등은 전 세계적인 문화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아메리칸 스타일은 일반적으로 관습에 구애받지 않는 디자인을 바탕으로 스포츠웨어와 아메리칸 캐주얼, 스트리트웨어와 고급스러운 드레스 스타일까지 매우 다양하다. 특히 개성, 엘레강스 감각과 코디네이션이 특징인 유럽풍의 캐주얼과는 달리 ‘아메리칸 스타일’은 아이비리그 스타일, 캘리포니아 스타일에서 볼 수 있는 미국적인 편안함과 실용성이 돋보인다.

흔히 ‘아메리칸 스타일’의 창시자로 패션 디자이너 클레어 맥카델((Claire McCardell)을 꼽을 수 있다. 20세기 초반의 패션은 파리의 꾸띄르 하우스에서만 창조되고 유럽과 미국의 기성복 업체들은 그것을 모방하기에 급급했다. 하지만 격식을 차리는 파리의 패션은 활기차고 운동을 좋아하는 미국 여성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어울리지 않았다. 패션 클레어 맥카델은 파리 꾸띄르 하우스의 지배에서 벗어나 미국 여성들을 위한 편안하고 실용적이며 동시에 우아한 아메리칸룩을 창조했다.

그녀의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옷들은 미국 여성들을 끊임없는 피팅과 불편함으로부터 해방시켰으며 미국인 특유의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패션미학을 선보였다. 특히 클레어 맥카델의 모던한 캐주얼 의상은 미국의 대량생산, 전시규제 같은 제약 속에서도 충분히 창의적이고 경이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클레어 맥카델의 작품들은 ‘아메리칸 패션의 클래식’으로 인정을 받으며 빌 블래스, 루디 게른리히, 페리 엘리스, 도나 카란, 타미 힐피거, 랄프 로렌 같은 미국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미쳤다. 결국 1990년 미국의 잡지 ‘라이프’는 클레어 맥카델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의 미국인으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