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계 패션계에서는 ‘뒷골목 샤넬’, ‘스트리트웨어 끝판 왕’ 등으로 불리는 ‘슈프림’이 화제의 중심에 있다. ‘한정판’이라는 희소성으로 신 소비계층인 밀레니얼 세대들을 매료시키더니 결국에는 프랑스 경매시장에 ‘루이비통’과의 콜라보레이션 제품이 등장해 1억원대의 낙찰가를 기록했다.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 패션의 만남과 요즘 이슈인 스트리트웨어의 기원을 살펴본다.

프랑스의 미술품 경매회사 아트큐리얼(Artcurial)은 지난 5월16일 파리에서 스트리트웨어의 절대강자 ‘슈프림’의 150여개 물품에 대한 경매를 실시했다. 경매에는 ‘슈프림’의 초창기 티셔츠와 카우스와 바바라 크루거, 리차드 프린스 등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 티셔츠부터 루이비통과의 최근 콜라보레이션에 이르기까지 인기품목으로 구성됐다.

다양한 콜라보레이션과 한정판 비즈니스 전략으로 쉽게 찾을 수 없는 ‘슈프림’의 아카이브가 대거 선보인 경매장은 베테랑 수집가들과 ‘슈프림’의 아이템을 열망하는 마니아들로 북적거렸다. 경매결과도 기대 이상이었다. 예상치의 두배에 가까운 10억8000만원이라는 인상적인 기록을 세우며 ‘슈프림’의 변함없는 인기를 반영했다.

낙찰된 물품 가운데 최고가는 ‘카우스 4 풋 컴패니언 2007’로 약 1억281만원에 팔렸고 ‘슈프림 x 루이비통 말 쿠리에 90 트렁크’는 약 1억1276만원으로 그 뒤를 이었다. 이외에도 슈프림 x 에버레스트 펀칭 백이 2582만원에, 슈프림 x 스플랜딩 베스켓볼이 1128만원에 각각 판매됐다.

경매에 나온 물품들은 20명 이상의 콜렉터들이 내놓은 것들이다. 즉, 20년도 되지 않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이 이미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소장품으로도 인정을 받고 있다는 의미다. 이제 가치소비 측면에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도 럭셔리 브랜드 같은 대접을 받고 있는 셈이다. 주목할 점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주요 소비 계층은 럭셔리시장의 새로운 소비계층인 밀레니얼세대라는 것이다.

재판매 웹 사이트에서 가격이 치솟는 한정판이라는 희소성 등 공통분모로 인해 젊은 소비자들에게 럭셔리와 스트리트웨어는 동급대우를 받고 있다. 이들 밀레니얼세대들은 이미 패스트 패션 브랜드인 ‘H&M’과 럭셔리 브랜드의 한정판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텐트소동과 리셀이라는 학습효과를 누렸기 때문에 그 반대 개념인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의 콜라보레이션은 그 연장선이다. 즉, 이 둘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필연인 셈이다.

경매를 진행한 아트큐리얼의 부회장 파비엥 나우단은 AFP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경매는 30년이 넘는 뉴욕의 스트리트웨어 문화에 대한 ‘일종의 리뷰’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 기간은 90년대 스트리트 아티스트, 뮤지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젊은이들이 이끌었던 ‘아웃사이더 언더그라운드’ 운동이 활발했던 시기로 이제는 보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이며 심지어 수익을 내는 활동으로 자리매김했다. 그 중심에 17년 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 ‘슈프림’이 있다.

지난해 7월 ‘루이비통’은 파리 본사의 고객서비스를 통해서 ‘루이비통 X 슈프림 콜렉션’을 더 이상 매장이나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고 스페셜 팝업스토어를 통한 판매 일정도 모두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즉, ‘루이비통’은 리셀러들의 횡포로 인해 문제가 일어나자 ‘루이비통 X 슈프림’ 콜라보레이션 상품의 온오프라인 전면 판매 중단을 선언했다. 리셀소비의 중심에 젊은 세대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등골브레이커인 기성세대들의 입김이 작용한 듯하다.

결국 엄청난 리셀가격(정가의 최대 30배)으로 논란이 된 ‘루이비통 X 슈프림 콜렉션’의 리셀가격은 그 이후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온라인 경매사이트인 이베이와 그레일드 등에는 루이비통 X 슈프림 제품인 ‘박스 로고 후드티’, ‘티셔츠, ’백팩, ‘스니커즈’ 등을 판매한다는 게시물이 계속 올라왔다. 한 리셀러는 소매가격이 98만원인 박스 로그 후드티를 약 2870만원에 판매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또 다른 리셀러도 소매가 51만원인 티셔츠를 약 550여만 원에 거래하고 싶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17년 된 ‘슈프림’은 밀레니얼 세대들의 패션 해방구다

그럼 화제의 중심에 있는 ‘슈프림’은 어떤 브랜드일까? 1994년 디자이너 제임스 제비아가 뉴욕을 기반으로 설립한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인 ‘슈프림’은 초기에는 ‘루이비통’ 등 럭셔리 브랜드와 다른 아티스트 브랜드를 무단으로 카피했다. 론칭 초기에는 ‘루이비통’을 무단으로 카피해 리콜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슈프림’은 1854년에 설립된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함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서 ‘2017 루이비통 가을/겨울 남성복 콜렉션’을 선보이며 화려하게 세계 패션계의 주류로 등장했다. 패션 관련 역사상 가장 핫한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만남이었다.

60년대 미니스커트가 하이-엔드 패션에 영향을 미친 일방적인 상향전파이론이라면 ‘루이비통’과 ‘슈프림’의 만남은 쌍방향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전파이론인 셈이다. 즉, 서로의 강점은 극대화시켜 밀레니얼세대 소비자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60년대에는 없었던 전 세계를 이어주는 소셜미디어라는 강력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의 도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쨌든 ‘파격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던 ‘루이비통 X 슈프림’ 캡슐 콜렉션은 과열된 리셀로 인해 ‘루이비통’이 팝업스토어를 통한 판매를 중단시키기는 했지만 오히려 소셜미디어 덕분에 빅 이슈를 만들었다. 전 세계적인 리셀열풍에 이어 콜렉터들과 ‘슈프림’의 마니아를 위한 경매시장이 열리는 바람에 어느새 스트리트웨어는 단순 소비재가 아닌 옥션시장의 주요고객이 되었다.

콧대 높은 럭셔리 브랜드와 뒷골목 스트리트웨어 브랜드의 만남에 대해 일부 평론가들은 ‘’슈프림‘이 침체된 ’루이비통‘을 살려놓았다’며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새로운 소비계층인 밀레니얼세대를 위한 무엇인가를 준비해야 하는 럭셔리 브랜드에게는 놓치기 어려운 유혹이었을 것이다. 이미 ‘슈프림’은 전 세계 밀레니얼세대들에게 단순한 개인 취향의 선택이 아닌 집단적인 묻지마 숭배의 대상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루이비통’이 콜라보레이션제품의 판매를 중단했던 시기인 2017년 7월부터 10월 사이에는 ‘슈프림’ 짝퉁의 인터넷 검색이 미국에서 무려 500%가 폭등하며 1위를 기록했다. 가짜라도 ‘슈프림’이면 상관이 없다는 태도다. 결국 밀레니얼세대를 새로운 고객으로 맞아야 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입장에서 봤을 때 밀레니얼세대들의 우상을 파트너로 삼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럭셔리는 이미 노동자 계급의 하류 문화와 소통

럭셔리 패션의 구매계층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다. 귀족과 농노계급시대에 귀족들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었다. 하지만 나머지 하류계급들은 얇은 여름옷 한벌과 두꺼운 겨울옷 한벌로 1년을 버텨야 했다. 이들에게 옷은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자본주의로 인해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가 등장했고 ‘돈으로 귀족패션을 소비하려는’ 부르주아계층들의 요구에 부응한 초기의 럭셔리 패션은 고급맞춤을 통해서 산업의 발전을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계급사회가 무너지기 시작했고 2차 세계대전은 통해 대량생산 체계가 구축되면서 패션의 대중화가 시작되었다. 물론 이 대중화는 개념상의 의미일 뿐 일반대중들의 생활 속까지 파급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패션시장은 부자들이 가는 매장과 노동자계급을 위한 매장이 공존했었다. 이때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계급은 자기들만의 하위문화를 만들었다. 팝과 영화 등 대중문화의 발전과 함께 하위문화는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를 통해서 럭셔리 패션과 노동자계급이 입는 패션의 문턱이 점점 더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패션의 하향전파이론이 패션의 상향전파이론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60년대 등장한 미니스커트가 대표적인 경우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부머세대들이 10대 후반이 되는 60년대에는 펑크, 히피, 모즈 등 다양한 하위문화가 등장했다. 록그룹의 팬덤이나 축구팀 팬클럽을 기반으로 하는 하위문화는 노동자계급이 주축을 이루었다. 이들의 룩은 비주류였지만 새로운 유행을 주도했다. 1990년대는 그래픽디자이너, 뮤지션, 스케이트보더, 서퍼 등 거리문화에 몸담은 사람들이 스트리트웨어를 주도했다. 사라졌던 아이템들은 실물을 모방해 만든 복제품 ‘레플리카(replica)’로 재등장했다.

이런 변화에 럭셔리패션도 대응했다. 소수의 사람들에게 비싼 제품을 파는 오뜨 꾸뛰르 마케팅에서 다수의 사람들에 다소 가격을 내려 제품을 판매하는 프레타포르테로 럭셔리산업을 확장한다. 이제 일반인들도 고급 맞춤복이 아닌 기성복으로 럭셔리패션을 소비할 수 있게 됐다. 결국 럭셔리 브랜드들은 노동자계층의 디자이너들을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영입해 하위문화를 고급패션으로 변주하게 된다.

특히 1990년대 들어 알렉산더 맥퀸이나 존 갈리아노 같은 노동자계급 출신 디자이너들은 ‘지방시’, ‘디올’ 같은 럭셔리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디렉터로 영입되어 예전 노동자계급의 옷을 고급패션으로 변주해 기존 패션의 틀을 완전히 뒤섞었다. 매스미디어를 통해서 대중문화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 분리되어 있던 고급문화에 하위문화적인 요소들과 뒤섞이면서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냈다.

20세기 후반 들어 대중문화가 글로벌 비즈니스로 발전하면서 관련 사업으로 성공한 기존의 부자들도 있었지만 음악이나 연기로 성공한 노동자계급 출신들도 이 상류층에 가세했다. 이들은 부자가 되었어도 어릴 때 입은 옷을 고급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 입었던 옷의 비싼 버전을 찾았다. 스트리트 패션이 비싸질 필요성이 생기자 럭셔리 브랜드들은 스트리트문화와 친화력을 가진 젊은 디자이너들을 대거 영입해 럭셔리패션과 공존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즉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웨어와의 만남은 이미 예견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