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면 도심의 가로수들은 겨우내 입었던 알록달록한 뜨개옷을 하 나둘 벗고 본연의 자태로 돌아가곤 한다. 이 뜨개옷은 동절기간 동안 나무에 해로운 병충해를 방지하고 거리 분위기를 부드럽게 조성하기 위해서 쓰인다고 한다. 한국의 가로수 뜨개옷의 효시는 2016년 덕수 궁 돌담길의 ‘트리 허그(Tree Hug)’라는 명칭의 활동이었다. 트리 허그 는 국내의 인터넷카페 회원들이 주축이 되었던 시작한 작은 퍼포먼스 형태였던 것이 이제는 ‘가로수 옷 입히기’로 불리며 도시 조경 및 미관 을 위한 연례행사처럼 행해지곤 한다. 그런데 이것이 공공미술의 하나 인 뜨개실 폭탄(yarn bomb)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뜨개실 폭탄은 종종 그 창작 활동에 사용되는 실이나 표현 방식에 따 라서 뜨개실 그래피티(yarn graffiti), 니트 그래피티(Knit graffiti), 크로 쉐 폭탄(Crochet boom), 게릴라 니팅(Guerilla knitting) 등으로 불린 다. 뜨개실 폭탄(yarn bomb)은 뜨개실을 사용해서 스웨터나 손뜨개를 뜨는 방식으로 도시의 공공물인 가로등, 가로수, 철제 울타리, 외벽부 터 벤치, 공중전화 박스, 동상 등에 옷을 입히는 것이다. 

지금의 ‘가로수 옷 입히기’가 활성화된 것처럼 도심 공공물에 옷을 입 히는 뜨개실 폭탄이 확산된 것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의 마그타 사예 드(Magda Sayeg)로 부터였다. 뜨개실 폭탄 작가로 불리는 사예드는 2015년 테드(TED) 강연에서 “어떻게 뜨개실 폭탄이 세계적인 공공미술로 퍼져나 갔는가”에 대해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강연에서 사예드는 자신이 수학을 전공한 사람이며 공공미술을 위한 전문적인 교 육 또한 받지 않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사예드가 시작한 뜨개질 폭탄 운동이 처음 에는 매우 작고 소소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첫 뜨개실 폭탄은 집 문고리의 차가운 질감을 뜨개실로 짜서 감싸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동네의 차가운 철제 교통 표지판과 소화전을 뜨개실로 짜서 감싸는 것으로 이어져 갔다. 사예드의 따 듯하고 소소한 행동이 사람들의 마음에 닿았던 것인지 얼마 후 그녀의 뜨개실 작 품들은 공공미술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2000년대 이후 미주 및 유럽을 중심으 로 글로벌하게 확산되었다. 그녀는 이 현상에 대해서,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 속에 서 바삐 살아가지만 여전히 친밀감을 주는 무언가를 갈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예드의 생각처럼 뜨개실 폭탄이라는 공공미술은 사람들에게 예술이 멀고 어려 운 것이 아니라 즐길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해주는 트리거가 되었다. 그녀 외에도 뜨개실 폭탄으로 공공미술을 행하는 작가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특 히 뉴욕 한복판의 ‘얼룩무늬 핑크색 황소’를 빼놓을 수 없다. 뉴욕 증권 거래소를 상징하는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황동색 황소 조각상을 올렉(Agata Oleksiak)이라 불리는 폴란드 출신의 아티스트는 ‘얼룩무늬 핑크색 황소’로 바꿔놓았고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에 열광했다. 또한 뜨개질이라는 행위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 는 미국의 아티스트인 데이브 콜(Dave Cole)도 있다. 그는 포크레인으로 성조기 를 뜨개질하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 총기 사용에 민감한 미국 사회에 장총을 뜨개질 바늘로 사용한 뜨개질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 외에도 사예드가 테드 강의에서 말했던 것처럼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내면에 발 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능력이 뜨개질 폭탄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015년 영국 보더스 주의 할머니들은 ‘수터 스토머스’라는 게릴라 뜨개질 모임을 꾸려서 지역 명소 40여곳을 뜨개질 작품으로 뒤덮어 뜨개질 폭탄의 즐거움을 보여주셨었다. 이 모임의 최고령 할머니는 당시 104세였다고 한다. 새해 다짐이 느슨해지는 봄이 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재능이 있다면 그냥 흘려버리지 말고 되돌아보는 시 간을 가지면 어떨까? 뜨개질처럼 소박하고 일상적이 재능이라도 그 끝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