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모다 피렌체에서
언어능력 부족으로 꿈이 좌절되다

사랑에 빠진 왕 린창은 학교 근처의 메이링이 사는 집과 우리 집을 오가며 지내기 시작했으며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행복해 보였다. 3개월 넘게 우리와 함께 지냈던 린창은 마침내 학교근처의 메이링이 사는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두 사람 모두 대만의 명문 대학 출신이며 경제적여건도 비슷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게다가 이탈리아라는 멀고먼 나라의 작은 도시에서의 극적인 만남은 두 사람 모두에게 정말 특별한 사건이었고 귀한 인연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후일 두 사람은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그들 사이에서 나의 역할은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노래처럼 ‘험한 세상에 다리(Bridge over troubled water)’ 가 되어준 것이었다.

한편 나는 피렌체 폴리모다(Polimoda Firenze)의 입시 날짜가 촉박했던 때여서 며칠간 밤을 새워 디자인 맵 작업과 드로잉을 하며 포트폴리오를 준비하고 있었다. 첨부해야 하는 실물 작품은 한국에서 가져간 패션대전 수상작을 제출하기로 하고 작품을 꺼내 다시 손질했다. 1986년 2월 시험당일 아침 피렌체 폴리모다에 도착한 나는 대기실에서 내 차례를 기다렸다. 드디어 내 차례가 오고 면접 시험장으로 들어가니 다섯 명의 시험관이 테이블에 배석해 있었다. 포트폴리오를 제출하고 구두 면접을 진행하는 동안 다섯 명의 시험관은 이탈리아어로 차례차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중 세 사람은 뉴욕 FIT에서 온 이탈리아어가 유창한 미국 교수들 이었고 학장인 앨런 피시맨 (Allen Fishman)도 중앙에 함께 자리했다. 이탈리아에 온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던 내가 잔뜩 긴장한 상태에서 서툰 이탈리아어로 떠듬떠듬 답변을 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고역 이었다. 실물작품 심사 차례가 되어 패션대전에 출품했던 작품을 제시하자 심사위원 중 몸집이 큰 여교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작품을 들고 서있는 내게 다가오더니 작품의 뒷면과 안쪽  봉제 상태 등을 살펴보았다. 그러더니 내 작품을 들어 자신의 몸에 대고 상기된 표정으로 다른 시험관들을 향해 영어로 크게 외치는 것이었다. “오 마이 갓, 잇츠 원더풀, 오우 아이 러브 잇!” 그리고 나자 학장인 앨런 피시맨이 영어식 이태리 발음으로 바로 질문을 던졌다. “싸이 쿠치뤠(sai cucire)?”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앨런 피시맨이 또다시 같은 질문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당시에 나는 패션에서 가장 기본적인 ‘바느질 하다’라는 의미의 단어 ‘꾸치레(cucire)’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너 바느질 할 수 있니?”라는 간단한 질문이었다. 시험이 끝나고 페루지아로 돌아와 시험결과를 기다리면서 내심 합격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지만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불합격이었다. 우편을 통해 도착한 장문의 편지에는 나의 실기능력에 대한 칭찬의 말과 함께 언어능력의 부족함에 대한 우려, 그리고 심사숙고한 모든 시험관의 결정에 의해 불합격이 결정 되어 유감이며 더 명확한 내용을 원하면 언제든 학교를 찾아와 상담할 수 있다는 내용이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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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지오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