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스트리트웨어와 럭셔리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패션업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비주류로 취급 받던 스트리트 패션에 하이패션을 조합해서 두 장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새 스타일은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특히 2018ㆍ2019년 F/W 콜렉션에서 큰 관심을 받아 가을 시즌 이후 트렌드의 변화에 귀추가 주목된다.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의 협업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파격적인 전략으로 두 브랜드의 팬을 포함한 소비자들의 관심을 잡기에 성공했다. 러시아와 중국의 경기 하락, 미국의 강(强) 달러정책 등으로 명품의 소비가 감소하자 위기에 빠진 글로벌 럭셔리시장은 디자인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서 잠재고객의 관심을 끄는 전략을 시도한 것. 결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에 따라 럭셔리시장의 규모는 앞으로 성장세를 탈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했다. ‘베트멍’, ‘구찌’, ‘발렌시아가’, ‘캘빈클라인’ 등 럭셔리 브랜드들의 스트리트 무드가 엿보이는 콜렉션의 흐름은 2018년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하우스 브랜드의 콘셉트를 유지하면서도 대중적인 요소를 적절하게 가미한 이들은 새로운 디자인 동향을 2018년 남성복 패션위크에서도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2018년 F/W 시즌 콜렉션을 선보인 밀라노에서는 유독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의 활약이 돋보였다.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펜디’의 콜렉션에선 소재의 변화, 흥미로운 요소를 더하는 디지털 이미지 콜라주, 그래픽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창의적인 브랜드 로고의 변화를 통해서 보수적인 콘셉트는 유지하되 젊고 트렌디한 요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모습을 보여주는 등 성공적으로 런웨이를 마쳤다.

이번 콜렉션에서 ‘펜디’는 공항에서 영감을 얻은 무대 세트와 독일의 여행가방 브랜드 ‘리모와(Rimowa)’와 협업으로 완성한 트롤리를 시작으로 모노그램과 스트리트적인 요소를 가미한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줬다. 브랜드의 시그니처 로고인 두 개의 F를 반대 방향으로 병치한 주카 프린트를 위트있게 활용한 타이포그래피라던지 모노그램이 가미된 퍼코트를 통해서 올드스쿨한 레트로 스타일을 ‘펜디’의 럭셔리한 스타일로 완벽하게 탈바꿈했다.

전통에 신선함을 더한 새 콜렉션 작업

또 신선한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시도했다. 영국의 왕립예술대학 졸업생이자 인스타그램에서 역설적이면서도 재미있는 감각을 더한 아트워크로 유명해진 그래픽 아티스트 헤이 라일리 (Hey Reilly)와 협업을 통해서 티셔츠, 파카, 트라우저에 경쾌하고 재미있는 패턴과 모티프를 적용했다. 헤이 라일리는 아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글로벌 패션업계에서는 그의 익살스러운 그래픽 아트워크에 주목하고 있다.

거리 위 간판 또는 트럭 컨테이너에 붙은 로고와 럭셔리 브랜드의 로고를 그래픽 작업을 통해서 교묘하게 합성하는 방법으로 브랜드 로고의 클래식한 틀에서 벗어나고 창의력을 자극하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그의 작업 테마였다. 펜디의 액세서리와 남성복 디자이너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는 인스타그램에서 헤이 라일리의 작업을 우연히 발견하고 그와 함께 협업 작업을 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펜디는 라일리에게 브랜드의 시그니처 모노그램과 텍스타일의 창의적인 변화를 통해서 브랜드를 더욱더 생동감 있게 만들어 주길 요구했다. 지난 2016년을 시작으로 조각가인 존 부스, 지난해에는 화가인 수 틸리와 함께한 콜라보레이션 이후 이번 협업은 3번째 작업이다. 콜라보레이션의 결과로 스트리트적인 디자인을 뒤집을 수 있는 나일론 후드가 달린 파카와 신축성이 있는 헤드 스트랩이 달린 미니 우산모자, 프라이팬에 얹혀있는 축구공에는 달팽이가 달라붙어 있다.

치즈블록 위에는 말이 서있는 프린트, 브랜드의 로고인 FF를 이용한 FFABULOUS, FFANCY, FFAMILY, FFAITHFUL, FFREEDOM 등 재치있는 문구를 만들어 내며 약간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신선한 협업작업을 통해서 브랜드가 고수했던 전통적인 스타일이 점차적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시 전성기를 달려보려는 굳은 의지가 돋보인다.

남성·여성·포멀·캐주얼의 경계 허물어

지난해는 ‘구찌’와 ‘발렌시아가’의 성공적인 재기와 럭셔리 브랜드와 스트리트 브랜드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이 글로벌 패션업계를 장악했다. 대중들의 큰 사랑을 받았던 이들의 새로운 변화와 시도는 올해도 주목을 끌만한 영향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12월 ‘발렌시아가’는 2018년 F/W 시즌 콜렉션을 시작으로 남성복과 여성복의 콜렉션을 통합해 지난 3월 파리 여성복 패션위크에서 이를 하나로 묶은 콜렉션을 선보였다.

지난 1월에는 2018년 F/W 시즌의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에서는 풀 콜렉션이 아니라 프리 콜렉션으로 행사를 개최했다. ‘발렌시아가’의 이번 첫 번째 프리 폴 콜렉션은 그동안의 유서 깊은 럭셔리 하우스 브랜드의 역사를 충돌하는 새로운 시도라고 관련 업계는 평가했으며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뎀나 바잘리아(Demna Gvasalia)가 선보인 ‘발렌시아가’의 2018년 프리 폴 콜렉션의 룩북은 파리의 거리에서 일상적이면서도 파파라치 느낌의 샷으로 구성했으며 남성을 위한 프렌치 하우스의 첫 콜렉션으로 기억되고 있다.

‘발렌시아가’는 이번 콜렉션에서 빅숄더 블레이저와 오버사이즈 코트, 티셔츠에 연결된 해체적인 스타일의 체크셔츠, 무심하게 어깨에 걸칠 수 있는 체인 숄더백, 선명한 카무플라주 패턴, 빈티지한 스타일 등 전체적으로 기존 포멀함의 경계를 허물고 스트리트적인 무드를 진하게 담아냈다. 또한 컬러의 대조적인 조합, 다양한 패턴을 사용하는 등 평범하면서도 그 속에서 해체적이고 파격적인 모습을 가미한 브랜드의 독창적이면서도 새로운 세계관을 일상적인 파리지앵의 무드 속에서 담아냈다.

업계에선 이를 엿보는 재미가 매우 역설적이라고 평가했다. ‘발렌시아가’의 이번 시도는 향후 패션업계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이번 콜렉션에서 남성복과 여성복을 믹스한 의상으로 런웨이를 진행한 ‘프라다’는 콜렉션이 열릴 장소를 ‘프라다 웨어하우스’로 결정하고 브랜드의 시그니처 소재인 나일론 원단을 가방뿐만 아니라 전체 콜렉션의 메인 원단으로 사용함으로써 브랜드가 변화를 위해서 많은 노력하고 있음을 표방했다. 특히 ‘프라다’ 가방의 원단으로 잘 알려진 방수 나일론 소재인 블랙 포코노(Pocone)를 남성 콜렉션에 적극 활용하는 등 1990년대 감성의 스포츠룩 느낌에 스트리트 무드를 적절하게 섞어 ‘프라다’만의 아이코닉한 무드를 완성했다.

여성·남성복의 경계 허문 새 스타일링

파리에서 진행된 ‘디올 옴므’의 2018년 F/W 시즌 콜렉션 또한 1990년대의 보이룩을 테마로 포멀과 캐주얼을 오고가는 다양한 스타일로 런웨이를 장식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크리스 반 아쉐(Kris Van Assch)는 인터뷰에서 “스포츠웨어, 스트리트웨어, 캐주얼, 럭셔리가 모두 섞여 있고 전달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는 등 지금의 패션세계는 매우 혼란한 지경이기 때문에 브랜드의 DNA를 분명히 하고 싶다”며 “초창기에 남성복의 테일러링을 여성복에 차용해 만든 것이 바재킷(Bar Jacket)이었듯이 지금은 여성복의 DNA를 다시 남성복으로 가져와 브랜드의 이미지에 적합하게 재해석할 생각이다”라고 밝혔다.

‘디올 옴므’의 이번 콜렉션에선 브랜드의 아이코닉 바재킷과 브랜드만의 특유의 실루엣에서 영감을 받은 구조적이고 날렵한 테일러링과 스트리트적인 요소가 깃든 헐렁한 바지, 하이 웨이스트 데님 트라우저, 컬러 시어링 장식이 들어간 짧은 레더재킷을 함께 매치한 재미있는 런웨이 무대를 연출했다. 특히 바재킷의 부드러운 곡선을 닮은 슬림한 허리 라인과 간결한 실루엣에 스트리트웨어 느낌의 반다나를 믹스한 올 블랙 룩은 지난 시즌보다 한 단계 더 발전했다는 느낌이다.

무대를 장식한 3개의 거대한 프레임 속에 가득 찬 다채로운 컬러의 조명 또한 하이브리드한 테마를 잘 보여줬고 베스트와 터틀넥에서 영감을 얻은 스트리트웨어 특유의 레이어드 감성을 더한 스트라이프탑도 큰 찬사를 받았다. 타투 느낌의 모티프는 스카프, 백, 주얼리 등 아이템에 올 오버 프린트를 사용했다. 프린트된 ‘포에버 영(Forever Young)’은 스트리트웨어 스타일과 스포츠웨어를 지칭하는 것을 증명했다. 의상을 입을 소년들이 타투 모티브가 실린 ‘디올’의 액세서리를 그들의 나이에 맞춘 아웃핏과 함께 스타일링할 수 있게 함으로써 유스컬처와 전통적인 하우스 브랜드 특유의 감성적인 부분의 밸런스를 잘 맞춘 똑똑한 콜렉션을 보여주었다.

크리스 반 아쉐는 ‘포에버 영’이라는 이번 콜렉션 주제를 통해서 젊음과 추억 그리고 애티튜드를 모두 이번 2018년 F/W 시즌 콜렉션에 반영했다. 그가 말하는 영원한 젊음은 지난날의 활기 넘치던 삶, 어린애 같은 열정과 순수함을 포함한 젊음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요즘 흔히들 말하는 ‘젊음’의 새로운 의미를 가리킨다. 스포츠웨어나 스트리트웨어를 젊음이라는 단어로 많이 사용하곤 하는데 이전에는 젊음을 언급하는 것이 10대 청소년, 1990년대의 하위문화, 카운터 컬처 등이었지만 지금은 젊은 세대를 위해서 많은 브랜드들이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하우스 브랜드의 콘셉트를 내려두고 스트리트웨어 또는 스포츠웨어적인 요소를 가미해 이미지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는 현재 패션업계의 추세를 크리스는 이번 콜렉션에서 교과서적인 예로 잘 보여줬다.

고유의 스타일에 대한 집착 버렸다

‘루이비통’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킴 존스(Kim Jones)는 여행가방으로 시작된 초기의 ‘루이비통’을 되돌아보며 전통적이면서도 클래식한 브랜드만의 스타일에 스트리트적인 감성을 더해 2018년 F/W 시즌 콜렉션을 성공적으로 현대화했다. 그는 아프리카의 이곳저곳을 여행하며 찍은 사진들에서 영감을 얻은 다채로운 컬러의 백팩, 수트케이스, 바위 텍스처 같은 느낌의 프린트를 네온 트렌드와 함께 믹스한 스타일을 런웨이에서 선보였다.

또 웨스턴룩 스타일을 가미한 카우보이 부츠, 캐시미어 소재의 스웻쇼츠, 플라워 프린트 레더 재킷과 함께 모노그램으로 뒤덮은 반짝이는 코트로 런웨이의 피날레를 장식하며 브랜드가 가진 저력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럭셔리한 테일러링과 스트리트웨어를 그만의 감성으로 믹스한 콜렉션을 프랑스의 메종에 소개함으로써 ‘루이비통’의 고리타분했던 이미지를 벗고 젊은 감성을 가진 럭셔리 브랜드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킴 존스. 그는 이제 브랜드를 떠나지만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함께 나아갈 ‘루이비통’의 여정에 패션업계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18년 F/W 멘즈웨어 콜렉션에선 스트리트 무드가 느껴지는 옷들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하우스 브랜드들이 고유의 스타일에 집착보다는 쉽게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스트리트 무드를 반영하게 되면서 이전보다 훨씬 웨어러블한 콜렉션들이 무대에 등장했다. 런웨이에서 소개된 의상들은 패션에 관심이 없던 소비자들도 쉽게 매치가 가능하고 친숙해진 스타일들로 변화함에 따라 럭셔리 브랜드를 이용하게 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개성있고 레트로한 스트리트 스타일을 다시 런웨이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관심이 커지면서 패션위크는 이전보다 더 신선해지는 새로운 전환점을 찾게 된 것. 특히 이번 F/W 시즌 콜렉션에 자주 등장한 오버사이즈 패딩재킷, 스니커즈만 봐도 대중의 패션이 반영된 것이 증명되는 셈이다. 고전적인 스타일에 스트리트 스타일을 접목하는 등 새로운 유니크한 부분을 부각하고 경제불황 속에서도 패션업계에 활기를 되찾게 해준 럭셔리 브랜드들의 파격적인 시도가 앞으로 어떻게 진화될지 그 흥미진진한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