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혹한 겨울의 잔향이 아직 살을 에고 있는 2월이지만 남성복 업계는 무술년 봄을 맞아 저마다의 채비를 갖춘 모양새다. 올해 남성들은 더욱 편안하고 쉬운 패션을 맞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패션연구소는 올해도 경계의 허물어짐이 이어질 것을 예고했다

지난해 국내 패션업계는 정권교체 등 새로운 변수를 통한 불황탈출을 꿈꿨지만 실질적인 매출실적은 전반적으로 저조했다는 분석이다. 통계청의 가계동향조사 의류신발품목 지출액 추이에 따르면 가계지출에서 의류신발품목은 지난 2016년 기준 4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특히 2013년을 기점으로 지출금액조차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의 ‘한국패션시장의 2017년 실적 및 2018년 전망’에 따르면 비록 패션소비자 생활형편지수가 지난해 상반기 50.2p에서 하반기 52p로 1.8p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지만 패션제품 구매수준은 상반기 49.4p에서 50p로 소폭 상승한 보합세를 기록했다.

대한민국 패션시장의 긴 불황에 맞서 남성복 업계들은 이종업계간의 협업이나 젠더리스 트렌드의 확대, 캐주얼라이징화, 초저가 상품 등 다양한 형태로의 변화를 시도해왔다. 지난해 남성복 시장에는 가격에 의해 구매를 결정하는 실속형 소비자가 늘어남에 따라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초저가 수트가 유행했으며 삼성패션연구소는 지난해 8월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2017년 하반기 패션시장의 트렌드와 키워드로 ‘가성비’를 지목하기도 했다.

다만 삼성패션연구소에서 언급한 가성비는 가격대를 낮춰 판매율을 올리는 전략이 아닌, 옷의 활용도와 기능을 강화해 직장이나 일상 등 좀 더 다양한 상황에서 입을 수 있는 상황을 요약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걸맞게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지난해 자사 주력 남성복 브랜드인 ‘로가디스’와 ‘갤럭시’에 가성비 트렌드를 녹여냈다. 특히 갤럭시의 경우 캐주얼 비중을 70%로 확대했으며 코디네이션은 물론 관리도 쉬운 ‘뉴 수트’를 출시한 바 있다.

남성복 시장은 가격대와 주요 타깃 층이 높은 복종에 속하며 이는 수트 한 벌의 구매에 있어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좀 더 적은 부담으로 마음 편하게 구매할 수 있는 가격대를 제시하거나, 비록 높은 가격대로 구매하더라도 다양한 활용도를 바탕으로 아무 때나 입기 편안한 전략을 채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트렌드에 따라 2018년 무술년 S/S 시즌 남성들은 조금 더 편한 무드의 패션을 맞이할 예정이다. 지금껏 남성들을 얽매어온 남성다움과 격식, 비즈니스의 굴레에서 벗어나 여유롭고 부드러운 실루엣에 리조트에 휴가를 온 듯한 감성의 데일리 트렌드가 주를 이룰 전망이다.

특유의 격식 벗어던진 남성복들

▲올 시즌 남성복 특유의 경계를 무너뜨린 ‘준지’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는 해외 패션위크들은 2018년 S/S 시즌 남성복으로 포멀에서 벗어나 일상과 파격 주목한 모양새다.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열리는 남성복 박람회 ‘피티워모(Pitti Uomo)’에서는 정통 클래식 수트 대신 핑크와 베이지 컬러 등 기존의 포멀 수트에서 찾아보기 힘든 컬러와 패턴이 돋보였으며 ‘2018 S/S 파리 남성복 패션위크’에서는 ‘발렌시아가’와 ‘베트멍’의 남성복 콜렉션이 일상적인 놈코어 룩에 주목한 모습을 보였다.

‘2018 S/S 밀라노 패션위크’를 통해 콜렉션을 선보인 남성복 브랜드 ‘닥스남성’은 런던의 주요 사교행사를 시작으로 크루즈에서의 휴식으로 마무리 되는 17~18세기 영국 엘리트층의 이미지를 테마로 삼았다. 브라운 컬러를 중심으로 사선 스트라이프와 아가일 체크 패턴으로 격식을 갖추면서도 틀을 깨는 대담한 시도와 리넨, 실크 소재로 여유로운 분위기를 살렸다.

패션 트렌드 정보그룹 ‘PFIN’에는 지난해 개최한 ‘18 S/S 시즌 남성복 콜렉션 트렌드 분석 세미나’는 해외 패션위크에서 이슈가 된 주요 경향과 해외 마켓의 흐름을 통해 긍정적이며 편안하고, 동시에 적극적이면서 행복한 삶을 꿈꾸며 전진을 멈추지 않는 남성상 ‘와이 소 시리어스(Why So Serious)'를 주요 키워드로 선정한 바 있다.

이 같이 자유롭고 편안한 새 남성상은 끊임없는 도전과 큰 성공으로 상징되던 남성들의 경향이 바뀌었음을 시사한다. 유수진 PFIN 대표는 “과거 큰 성공을 꿈꾸던 남성들은 이제 소박한 행복을 꿈꾸며 긍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전했다.

남성복 디자이너 브랜드들은 상대적으로 트렌드의 흐름에 보다 즉각적이며 파격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남성복 브랜드 ‘준지’는 지난해 홍콩 패션박람회인 ‘센터스테이지’에서 게스트 디자이너로 선정돼 2018년 S/S 콜렉션에서 팽창과 수축을 콘셉트로 성별의 경계를 허무는 파격적인 행보를 선보였다. 준지는 볼륨감과 오버사이즈를 강조하는 한편 런웨이에 오른 모델 중 절반을 여성 모델로 선정해 여성적인 실루엣을 토대로 새로운 트위스트를 표현했다.

기존 콜렉션 라인과 분리된 별도의 커머셜 브랜드로 2018년 S/S 시즌을 겨냥해 론칭한 남성 컨템포러리 브랜드 ‘송지오옴므’는 관능적인 매력을 갖춘 남성을 위한 시티 라이프스타일에 주목했다. 또한 포멀과 캐주얼이 공존하는 토털 웨어로 구성해 포멀라인에서 19세기 로맨틱함이 표현된 아방가르드한 실루엣을 수트에 표현하면서 동시에 캐주얼 라인에서 밀리터리를 기반으로 한 웨어러블한 상품들을 구성해 아트와 유스의 정신을 결합한 아이템을 선보이기도 했다. 

[FOCUS]올 봄, ‘일상’에 빠진 남자들(2)에서 계속됩니다